
잉그바 카를손·안네마리 린드그렌 지음, 윤도현 옮김,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논형, 2009.
사회민주주의가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는 자유, 평등, 연대이다. 자유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지는 않는다. 나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내가 더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속한 집단의 힘을 빌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무질서나 범죄, 그리고 실업, 질병으로 인한 위험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집단이 제공하는 치안, 교육, 의료 서비스 등에 의존해야만 한다. 집단이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기능하려면 개개인이 집단의 규칙들을 지켜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것이 더 나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다(26~27쪽). 신자유주의에서는 자유를 '개인의 의사결정에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자유는 강자가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보장하는 반면, 그로 인해 약자들의 자유가 억압 받는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의 자유가 박탈당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자유는 진정한 자유라고 할 수 없다(28~29쪽).
······ 개인의 자유는 그가 속한 사회를 통해서 실현되어야 한다 ······ 하지만, 동시에 집단주의의 여러 위험한 형태들에 대해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30쪽)
사회민주주의에서의 평등은 모두가 똑같은 취급을 받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각자가 처한 여건은 모두 다르다. 평등이란 이렇게 각자의 처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유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동일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고유한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동일한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 (33쪽)
정치적 민주주의는 평등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본적인 교육, 의료 등 일정 수준의 경제적, 사회적 보장이 없으면 사람들은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기 어렵다(33~34쪽).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자유와 평등이 상충되는 것처럼 말하고는 한다. 그러나 평등이란 "자유에 대한 동등한 권리"이다(37쪽). 만약 평등하지 않다면 강한 자는 엄청난 자유를 누리고, 약자의 자유는 사라진다.
······ 평등은 바로 자유의 전제조건이다. 오직 평등한 사회 속에서만 개인들은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37쪽)
평등과 효율성이 상충된다는 주장들도 문제가 있다. 경제가 정말로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고소득 전문직들뿐만 아니라 보통의 사람들, 혹은 낮은 직급의 사람들도 충분한 보상을 받으며 의욕을 가지고 자기 일에 몰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능력과 책임에 따른 대가라는 주장은 모든 직업, 직종에 당연히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부 직업들만을 떼어내어 이 직업들만 높은 수준의 노동 의욕과 능력이 있기에 특별히 더 많은 보상을 해주어야 하고, 반면에 이 직업들이 더 가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른 직업들은 경제적 수입 측면에서 자제해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보수주의자들이 중요한 동력이라고 주장하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부 직업들 그리고 일부 지위에만 해당되는 말이라는 것이 종종 사실로 드러난다. 그러하지 못한 직업들-그리고 때로는 모든 직업들-은 그들이 아무리 유능하게 직무를 수행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노력이 특히 임금으로 표현될 때는 "그렇게 가치 있지 못하다"는 것을 억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일을 열심히 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30쪽)
미국은 서유럽보다 실업률이 낮다. 이러한 사실은 종종 서유럽도 미국처럼 임금격차를 확대하기만 하면 실업을 없앨 수 있다는 긍정적 증거로 주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낮은 실업률은 파트타임 노동을 하면서 실제로는 실직상태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비판하고 있다. (41쪽)
많은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연구는 경제적 평등이-이에 대한 많은 비판들과는 정반대로-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42쪽)
연대란 '하나의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감정이다. 우리가 모두의 자유를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 즉 평등을 올바른 가치로서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연대의식 때문이다(48쪽).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해야 한다는 유물론적 역사관을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인위적으로 철폐하고 국가소유로 전환한 사회 체제가 공산주의 국가들이다. 공산주의는 일당 독제라는 억압적 정치체제를 가졌었고, 경제적으로도 많은 비효율성을 드러냈다. 사회민주주의는 이러한 혁명적 전환에 대해 회의적이다. 무엇보다도 대중들의 안녕을 위해서 대중들을 억압하는 공산주의의 비민주성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지 않고도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어떻게 권력(권리)를 확보할 수 있느냐다. 즉, 자본주의의 많은 문제점들은 정상적인 정치적 과정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12~24쪽).
······ 과거에 억압당했던 자들에게 권력이 주어지면서 사적 소유를 반드시 폐지하지 않고도 불의와 착취에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이런 인식에 도달하였는데, 이러한 새로운 방향정립은 1932년의 전당대회에서 분명하게 확인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89쪽)
즉 사적 이윤에 대한 견제 균형장치를 만들어 사적 이윤이 독재자가 되는 대신에 오히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하는 것이다. (94쪽)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결과적으로도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권력의 축이 자본가 쪽에서 노동자 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 자유, 평등, 경제적 안정 그리고 사회 정의 같은 목표들이 이른바 '정통orthodix' 사상 노선을 추종했던 나라들에서 보다도 훨씬 더 많이 실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4쪽)
그럼에도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의 영향력, 특히 유물론적 역사관을 부정하지 않는다.
생산 관계에서 만들어진 태도는 정치적 생활에서도 다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에 우리가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는 시민들의 정치적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우리는 종업원들이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그런 노동생활을 가져야만 한다. (70쪽)
다시 말해서 우리가 자유와 민주주의가 있는 '사회적 상부구조'를 가지길 원한다면, 우리는 경제적 토대, 즉 생산영역을 이러한 이상에 일치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 시민들이 ······ 기업 활동에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게임의 규칙')에 대해 공동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 . 그리고 피고용인들이 작업장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노동조합을 통해서 일상의 작업 방식은 물론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 . (71쪽)
시장경제는 시장에 참여하는 대기업들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 그리고 소비자들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경제 체제이다. 시장경제가 추구하는 이상은 모든 시장 참여자들이 거래를 통해 이익과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이러한 이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 사적 기업은 제멋대로 내버려 둘 경우, 시장경제의 원칙과 자주 갈등을 빚으면서 활동하게 된다. (104쪽)
따라서 경쟁을 저해하거나 시장 참여자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사적 기업, 그리고 최근에는 금융 자본의 초법적인 행태를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규제는 오히려 시장경제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필요하다.
······ 자유 시장을 촉진하고 그것이 이상에 부합하게 작동하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정부의 규제를 이용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잘 정리하는 것이다. 즉 사적 기업만으로는 진정한 시장 경제를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진정한 시장경제의 이익과 기업가의 개인 이익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105쪽)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의 복지정책에 대해서, 사람들의 일할 의욕을 감퇴시키고 복지 제도에 대한 의존성을 증가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은 모순이 많다.
······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동체의 경제적 지원에 의존해야만 하는 ······ 사람들은 실업자이거나, 제대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울 정도의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복지급여에 대한 의존'의 원인은 일자리의 부족, 낮은 임금인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의존성'을 차단하고자 한다면, 일자리를 증가시키되 동시에 사람들이 제대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이 보장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복지급여에 대한 의존성'을 가장 소리 높여 비판하는 사람들 중의 다수가 동시에 임금격차의 확대와 더 많은 저임금 직종의 확대를 주장하는 견해를 지지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나햐면 저임금 직종의 확대는 당연히 그 어느 것보다도 복지급여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147쪽)
자유주의자들은 사회 문제의 원인을 지나치게 개인화하는 경향이 있다. 네가 가난한 이유는 네 잘못이라는 것이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이것은 문제의 해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것은 모든 사회 문제를 개인의 의지의 문제로 바꿔버리면서 사회 문제와의 진지한 대결을 회피하는 것이다. (151쪽)
개인이 혼자서 자신의 생활조건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생활조건은 개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많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실업, 질명, 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우리가 함께 만든 사회적 제도들을 통해 지원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도움을 받는 수혜자로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극복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자원들을 제공하는 문제다. (152쪽)
사회민주주의가 시행하는 복지 제도들은 연대의 측면에서도 의의가 있다.
우리가 세금을 내면서 얻으려고 하는 것은, 특 보편적, 조세 기반적 복지정책에서 나오는 어떤 바람직한 사회적 질서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한 병원 치료를 위해서 세금을 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우리들의 건강을 돌볼 수 있다는 사실에 깃들어 있는 사회보장-그리고 경제적 효율성-을 위해서도 세금을 낸다. ······ 의료, 사회서비스 그리고 교육과 같은 것들은 사회민주주의에게 있어서 집단적 유용성을 가지는 것들이다. 우리 모두는-설령 개인에 따라서는 이것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이것들이 잘 운영되도록 하는 데 공동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이를 위해 세금을 내는데 관심을 공유하는 것은-물론 어느 정도는 우리 자신을 위한 지출을 의마한다 하더라도-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돈으로 우리가 사회적 이득과 개인적 이득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큰 장점이 아닐 수 없다. (157쪽)
이러한 복지 서비스를 공적 영역을 통해 제공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복지 서비스가 공적 영역을 통해 제공되어야만 하는 이유도 있다.
······ 기업의 소유자는 거기서 나오는 이윤으로 먹고 살아야만 한다. 이것은 비용을 절감하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러한 노력은 넓은 의미에서의 업무의 효율성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어떤 일들(예를 들어 많은 간호를 필요로 하는 환자나 특별한 별도의 배려가 필요한 학생의 경우)을 회피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따라서 사적 기업의 성격이 강한 사회 시스템에서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경향이 항상 존재한다. ······ 우리는 시장에 기반한, 상품의 생산에나 적합한 해결책을 어떤 세심한 고민도 없이, 욕구에 기반한 서비스의 생산에 적용할 수는 없다는 견해에 찬성한다. (163쪽)
끝으로 저자들은 세계화와 금융자본의 힘이 민주주의나 자유, 평등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다. 이제 개별 국가들이 정치적 조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여지가 줄어들고 있으며 금융자본은 실물 경제로부터 괴리되어 통제되지 않는 힘으로 부상하고 있다(182~183쪽). 따라서 외환 거래 시마다 특별세를 부과하는 등의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184~185쪽).
한국 사회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들에 대해, 특히 많은 경제지면의 활자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들이 많아서 통쾌하다. 그냥 한 번 읽고 지나치기에는 그 주장들의 무게감이 상당하다. 그래서 읽다가 밑줄 친 부분들을 가능한 많이 인용하였다. 번역의 문제인지 원작의 문제인지 읽기가 수월하지는 않다. 그리고 논의의 흐름이나 주장의 근거가 그다지 논리 정연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가장 사회민주주의와는 가장 거리가 먼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무엇이 당연한 것인지'에 대한 예민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회민주주의를 직접 실천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귀 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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