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죽음의 수용소에서》, 2017, 청아출판사.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물음은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뚜렷한 답을 얻기도, 답을 얻는다고 한 들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질문을 계속 던지는 이유는 나에게 어떤 선택권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여건과 제약들, 어찌할 수 없는 선택들이 내 삶을 얽어 매고 있더라도, 나에게는 내 삶에 대한 약간의 결정권이 약간은 남아 있다는 일종의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아무리 극단적인 고난 속에 처하더라도 사람에게는 삶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 여지가 항상 남아있다고 말한다. 그 근거로서 그는 자신이 겪었던 수용소 생활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치 수용소에서 참혹한 경험을 하면서도 몇몇 사람들은 희망, 생명,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았다고 말한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에게는 그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은 항상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은 일단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실제로도 그 상황을 잘 이겨내서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조건이나 운명,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느라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곤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저자가 희망을 놓지 않고 책임감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 또 어떤 사람들은 책임을 회피할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이유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를 포함해서, 그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들은 나름 정신적으로 의지할 만한 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신앙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수용소 밖에서 맺었던 인간관계이기도 했던 것 같다. 저자의 경우에는 자신과 아내와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수용소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나온다(77~80쪽). 따라서 애초에 이러한 신앙이나 인간관계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고난 속에서 좌절하고 자신의 삶을 내팽개쳐 버리기가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몇 가지 아쉬웠던 부분들이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고난과 허무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고통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삶에 별 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부당함일 것이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큰 고통을 일으킨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굳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필요성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필요성을 찾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필요성을 찾으라는 요구는 시련과 맞닥뜨려 당혹해하는 사람들을 자칫 더욱 소외시킬는지도 모른다.
고난을 꼭 미래 시점에서 바라보아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시련 속에서도 그것의 의미를 깨닫고 받아들이면 나중에는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노력[혹은 고통]-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에 충분히 익숙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근대적인 패러다임에 자신을 끼워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이미 일상히 충분히 고난이 된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자의 이야기가 얼마만큼의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다.
나는 시련과 고통을 개인화하는 해석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가 겪었던 수용소 생활이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고 말하기 전에, 우선은 그것이 매우 잘못된 일이라는 선언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도 반드시 필요하다. 고난의 구체적인 경험은 개인이 겪고 짊어져야 하지만,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은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그러한 비극에는 사회적인 요인이 있으며, 그 원인을 인식하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생략하고 고난을 개인화하는 것에 몰두한다면 노예에게 저항하지 말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이 책은 정치, 사회, 역사에 관한 책이 아니라 '로고테라피'라는 심리치료의 한 분야를 소개하는 목적이 강한 글이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글이 그다지 논리적이거나 설득력 있지는 않다. 좀 더 깊고 넓은 성찰의 영역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울리는 삶에 대한 현명한 시각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수정 : 2020.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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