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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재

《21세기 자본》

토마 피게티 저, 장경덕 외 옮김, 《21세기 자본》, 글항아리, 2014.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잘 먹고 잘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는 그것이 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책은 두껍지만 전달하고 있는 이야기는 간단하다. "r>g".
 
  자본수익률(r)은 자본으로부터 얻는 수익이다. 자본이란 많은 돈이 모인 것이다. 따라서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그 돈으로부터 얻는 소득이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나타내는 비율이 곧 r이다. 성장률(g)은 사회 전체의 소득이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의미한다. 돈이 많이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소득자와 거지까지 포함한 사회 전체의 소득이 얼마나 증가하는지, 그 비율을 나타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수익률(r)은 경제 성장률(g)보다 크다. 역사적으로도 항상 그래 왔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그럴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18세기와 19세기에는 순수한 자본수익률이 종종 4~5퍼센트를 웃돌았던 데 반해, 21세기 초에는 자본/소득 비율이 과거의 높은 수준을 회복함에 따라 3~4퍼센트에 가까워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48쪽)
 

  오래 전부터 땅을 가진 사람들은 그 땅을 임대해 주고서 땅 값의 5%에 해당하는 지대를 받아왔다. 지금은 땅 말고도 다른 형태의 자본들이 많다. 현재 이런 모든 자본들의 수익률이3~4% 정도 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장률(g)는 이에 훨씬 못 미친다. 역사적으로 g는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된 20세기에도 1.7%밖에 되지 않았다.
 
 

  1910~2012년 전 세계 1인당 생산 증가율은 1.7퍼센트를 기록했으며, 유럽이 1.9퍼센트, 미 대륙이 1.6퍼센트 등으로 나타났다. (118쪽 표 2.5 설명)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낮은 성장률은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예상이다.
 
 

   지난 두 세기의 역사는 선진국의 1인당 생산이 연 1.5퍼센트 이상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말해주지만, (...) 여기서 제시할 중간값 시나리오는 장기적으로 부유한 나라들의 1인당 생산 증가율이 연 1.2퍼센트라는 가정에 기초한 것으로, 이는 (...)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것이다. (119쪽)
 

  따라서 예전에도 r은 g보다 컸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자본을 가진 사람의 소득은 3~4%씩 늘어나는데, 사회 전체의 소득은 1.2% 정도밖에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연히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 전체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게 된다. 부자가 더 부유해지는 것이다.
 
 

   r>g라는 부등식은 과거에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등식은 근본적인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기업가는 필연적으로 자본소득자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노동력밖에 가진 게 없는 이들에 대해 갈수록 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자본은 한 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다. (690쪽)

 
  "자신의 노동력밖에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자본가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출발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불리해진다. 반면,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자본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전혀 하지 않고도 여유롭고 넉넉하게 살 수 있다.
 
 

   (…) 만약 r>g라면, 자본수익률 중 성장률(g)과 동일한 일부분만 자본에 재투자하고 나머지(r-g)를 소비할 수 있다. 부등식 r>g는 자본소득자 사회의 기반이 된다. (680쪽)

 
   자본소득자들은 벌어들인 r에서 g만큼만 저축을 하면 된다. 만약 그보다 저축을 덜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소득이 g만큼 증가할 때, 자신의 재산은 그보다 더 적게 증가하므로 먼 훗날에는 재산의 양이 추월을 당할 수도 있다. 따라서 영원히 추월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g만큼만 저축을 계속하면 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소득이 g만큼 증가할 때, 자신의 재산도 g만큼 증가하므로 추월이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나머지인 r-g는 펑펑 쓰고 다녀도 된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더라도 r-g만큼만 쓰고 다닌다면, 자본소득자는 영원히,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부유하게 살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r>g는 시장의 불완전성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따라서 시장을 통해서 해결할 수도 없다. 오직 정치적인 의사 결정을 통해서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r>g는 시장의 '불완전성'에 따른 것이 아니므로 순수하고 완전한 경쟁을 통해 바꿔놓을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해야 한다. 위험은 현실이지만 진정한 대안은 아직 없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면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691쪽)
 

  저자는 자본에 대한 누진적 과세를 제안한다.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물리되,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높은 비율의 세금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본이 무한 증식하면서 사회의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세율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빈부 격차의 정도에 따라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결정할 수 있으나, 저자는 단 몇 %의 자본세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본세를 물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가진 모든 자본을 조사하고 측정해서 데이터로 만들어야 한다. 저자는, 이러한 데이터가 빈부격차나 사회 정의에 관한 논의에 구체적이고 확실한 근거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한가운데에 그러한 논의의 장(場)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현재 자본의 국제적 이동이 매우 활발하기 때문에 단일 국가가 이러한 자본세를 도입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 즉 자본에 대한 누진세는 높은 수준의 국제 협력과 지역별 정치적 통합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691쪽)

 
  피게티의 이야기는 기존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보이는 태도와는 상당히 다르다. 다음 인용문에서, 그가 경제를 경제 문제로만 바라보는 학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의 이런 태도를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나는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라는 표현을 훨씬 더 좋아한다. 이 표현은 다소 낡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에는 경제학과 다른 사회과학 분야를 구분하는 유일한 차이가 경제학은 정치적이고 규범적이며 도덕적 목적을 지닌다는 데 있음을 말해 주는 것 같다. (692쪽)
 

  나는 경제 현상을 숫자와 등식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진실을 숨기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기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이를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이런 모형들은 흔히 자기 영역을 지키고 내용의 공허함을 가리는 데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학자들은 그들이 설명하려는 경제적 사실이나 해결하고자 하는 정치, 사회 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기술도 없이 순수한 이론적 고찰에 지금까지 아주 많은 에너지를 허비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693쪽)

 
   책이 두꺼운데, ‘굳이 이렇게 두꺼울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독자가 도표를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또 말로 세세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1980년에 몇 %였다가 다시 하락하여 1990년에는 몇 %가 되었다”는 식의 설명이 반복되다 보니 읽는 것이 다소 지루했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서장과 결론만 읽어도 전체 주제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이란 무엇인지, 자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사회 속에서 나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자본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책에 나오는 등식이 두 개가 있다.
 
 

  α (자본소득 분배율) = r (자본수익률) × β (자본/소득 비율) (69쪽)

 
  이 식은 다음과 같이 다시 써서 이해하는 것이 쉽다.
 
  α = (r × 자본) / 소득
 
  사회 전체의 소득 중에서 자본에게 돌아가는 몫(α)은, 사회 전체의 소득 중에서 자본 수익(r×자본)이 차지하는 비율과 같다. ‘r×자본’은 자본에서 얻는 소득을 뜻한다. 이를 사회 전체의 소득(‘소득’)으로 나누면, 사회 전체의 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비율, 즉 ‘사회 전체의 소득 중에서 자본을 가진 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된다. 동어 반복에 가깝다.
 
 

  β (자본/소득 비율) = s (저축률) / g (성장률) (201쪽)

 
  자본/소득 비율은 저축률을 성장률로 나눈 값과 비슷하다. β는 자본이 얼마나 축적되었는지를 나타낸다. 그 정도를 화폐단위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에 대한 비율로 측정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시대별, 국가별 차이에 의한 변수들을 제외시키려는 저자의 의도다. 예를 들어, 자신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나는 1억 원이 있다”라고 말했다고 치자. 1억 원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의 경우, 1950~60년대에 1억 원은 엄청난 부이지만, 지금은 1억 원으로 집 한 채도 사기 힘들다. 대신, “나는 우리나라 1인당 평균소득의 20배에 달하는 돈을 가지고 있어”라고 말한다면 이러한 문제를 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에 부가 얼마나 축적되었는지를 그 사회의 소득으로 측정한 것이 β이다. 주요 선진국들에서 s는 대략 12%(나라별 편차는 크다), g는 2% 정도(역시 편차가 있다)이므로 β는 600% 정도가 된다. 이는 주요 선진국들에서 부가 소득에 비해 6배만큼 많이 축적되어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