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69)
혁신 나는 수도 없이 혁신이라는 단어를 듣는다.그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나야말로 정말로 혁신적인 사람이다!'그리고 나는 입을 굳게 다문다.혁신적인 생각은 절대, 단 한 마디도,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언컨데,세상에 이보다 더 혁신적인 일은 없다.     (수정 : 2023. 2. 20.)
랑데뷰 밤 10시.술에 취한 나는어둠에 휩싸인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보았다.누구는 걸어가고, 누구는 부모님이 차로 데리러 왔다. 나도 그 어둠이 익숙했었다.저 문에 들어서고 나설 때그 안의 모든 것들이 꿈같이 역겨웠다. 그들은 운동장에 잔디를 심었다.잔디가 망가진다고체육 수업은 으레 강당에서 하는 것이었다.우리는 운동장 모서리를 가로질러 잔디를 몇 발자국 밟았다. 저녁을 먹고 교실로 걸어오며창문에서 터져 나오는 눈부신 형광등 빛을 바라보았다.끔찍하게 밝았다. 몰래 틀어놓은 TV 시트콤에서영혼 없는 웃음들이시들어가는 청춘을 핥았다.밝아서 끔찍했다. "잘못되었다."나는 하교하던 학생에게 외치고 싶었다.너도 우울하니?너도 분노하고 있니?나는 아직도 우울하단다.나는! 아직도 분노하고 있단다. 교문 앞은 여전히 어두웠다..
상추씨 티끌처럼 가벼운 상추 씨앗을 심으면 금세 자라서 손바닥 만한 잎이 달린다. 계속 키우면 무릎까지 높게 자란다. 손바닥보다도 큰 이파리가 빼곡히 달린다. 먼지 같은 씨앗 하나가 이렇게 크게 자라는 것도, 이렇게나 많은 상추 잎이 생겨나는 것도 신기하다. 그러다가 꽃이 피고 씨를 맺으면서 시들어 버린다. 상추 한 포기가 시들어 사라지는 것은 그리 아쉽지 않다. 애초의 그 작은 씨앗 하나를 떠올린다면, 이 상실은 상추씨 하나를 바람에 날려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무게감을 가질 뿐이다. 나 역시 티끌보다도 작은 하나의 세포에서 비롯되었음을 상기한다면, 내가 태어나서 성장했다가 시들고 사라지는 것도 그리 대단한 일은 못되는 것 같다. 물론 사람은 부모의 사랑과 보살핌,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영향 없이..
《건축학교에서 배운 101가지》 메튜 프레더릭 지음, 장택수 옮김, 《건축학교에서 배운 101가지》, 동녘, 2008. 평소 건축에 관심이 있어서 건축학 입문을 비롯한 책 몇 권을 샀다. 이 책은 건축학 교수가 건축을 배우는 사람들이 때때로 떠올리면 도움이 될 원칙들을 정리한 것이다. 왼쪽에는 손그림을, 오른쪽에는 간결하게 핵심을 전달하는 글들이 실렸다. 분량이 적어서 빠른 시간에 읽을 수 있지만 쉽게 지나칠 만한 내용은 아니다. 건축 이야기지만 일상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는 지혜들이 눈에 띈다. 왼편에 있는 그림들이 간결하면서도 이해를 돕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긁은 글씨는 저자가 강조한 것이다. 건축은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된다. ······ 근본적인 아이디어 없이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공간계획가에 불과하다. 공간을 계획해서 '잘..
《정치가 우선한다》 셰리 버먼 지음, 김유진 옮김, 《정치가 우선한다》, 후마니타스, 2010. 들어가며 사회민주주의의 본질,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유럽이 2차 세계대전 후에 안정적으로 번영할 수 있었던 것은 사회민주주의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시기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도 계급간 갈등이 완화되었고 사회는 평화로웠다. 자유주의자나 시장주의자들은 이것을 자유시장이 이룩한 성과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장이 훨씬 자유로웠던 19세기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사회 갈등으로 불안과 폭력이 난무했다. 따라서 20세기 후반부의 경제적인 번영과 사회적 안정은 자유주의나 시장경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저자는 이것이 시장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적절히 통제했던 사회민주주의 이념의 성과라고 주장한다. ..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유시민,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생각의길, 2015. '어떻게 쓸 것인가'란 질문에 쉽고 상세하게 답을 한 책이다. 글을 쓰고 있거나 쓰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글쓰기 기초를 되새기기 위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각 장별로 요지와 인상 깊었던 내용을 정리했다. 1. 논증(論證)의 미학(美學)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글을 쓸 때에는 세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규칙은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19쪽). 취향 고백은 굳이 논증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주장은 근거를 밝혀 논증해야 한다. 실제로는 취향 고백인데 주장처럼 말하거나, 또는 주장을 하면서 자신의 취향 고백을 은연중에 섞는다면 논증이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19쪽). 자신의 가치판단에 따라 특정한 용어를..
의심 점심시간,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우리 일행도 그 뒤에 선다. 커피 한 잔에 삼사천 원이다. 여기에는 재료값뿐만 아니라 임대료, 인건비, 마케팅 비용, 각종 유지비, 그리고 사장과 본사에 돌아가는 이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항목별로 그 숫자까지 알 수는 없다. 경제학자들은 커피 한 잔을 사 마신다는 것은, “커피 원두와 뜨거운 물의 혼합물뿐만 아니라 거기에 들어간 노동력, 카페의 접근성이 주는 편리함, 그리고 매장 인테리어와 음악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 그리고 그 카페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까지 같이 구매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왜 하필 사천 원이어야 하는지, 그 가격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결정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그저 ..
과정과 결과 과정과 결과를 조화시키는 방법은 '천천히 노력하는 것'이다. 모든 꽃들은 그렇게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