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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知圖)

무엇을 쓸 것인가?

 '글을 쓸 것인가?' 쓴다면 '무엇을 쓸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 글쓰기는 이 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좋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재료를 써야 한다. 훌륭한 요리 솜씨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형편없는 재료를 가지고 훌륭하게 조리를 해봤자 좋은 요리가 되기는 어렵다. 재료가 신선하고 맛있으면 요리 솜씨가 그다지 좋지 않더라도 꽤 괜찮은 음식이 될 수 있다. '어떤 식재료를 쓰느냐'는 요리의 기본 수준, 기초가 된다. 따라서 뛰어난 요리사의 첫째 덕목은 좋은 식재료를 구별할 수 있는 안목과 그것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글쓰기에서도 '무엇을 쓸 것인가'는 '어떻게 쓸 것인가'보다 중요하다. '무엇'에 해당하는 것은 글감과 요지이다. 어떤 것에 대해 쓰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글의 근본, 기초가 된다. 서툰 글솜씨라도 하려는 이야기가 가치가 있으면 좋은 글이 된다. 훌륭한 표현력을 발휘했지만 글의 요지에 유익함이 없으면 좋은 글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글쓰기 재료인가?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자기 생각과 감정이다. 글쓰기는 의사소통 수단이다. 자기의 생각을 글에 실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여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따라서 글 안에 자신의 생각이 담기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요지가 자기의 생각이 아니거나, 다른 사람이 써 놓은 글을 소재로 삼아 글을 쓸 경우에는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도 어렵다. 이는 마치 다른 사람이 해놓은 요리를 재료로 해서 내가 다시 요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김치를 가지고 내가 김치찌개를 만든다고 치자. 김치찌개 맛은 김치를 만든 사람의 솜씨에 크게 좌우된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저 김치에 육수를 넣고 좀 더 끓이는 것뿐이다. 내가 배추를 고르고 김치를 담가서 김치찌개를 만든다면 내 선택과 능력의 영역이 훨씬 넓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나만의 맛을 표현할 여지도 더 많다. 훌륭한 요리사가 좋은 재료를 구하듯 글쓴이도 자신의 경험과 정체성에서 신선한 원재료를 건져 올려야 한다. 

  '무엇을 쓸 것인가'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말이 갖는 힘 때문이다. 내가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든, 그것을 옹호하든 비난하든 상관없이, 말에는 '그 대상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갖는 힘이 있다. 누군가가 "자두는 너무 셔"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비록 부정적인 평가이지만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두를 떠올린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나중에 자두를 기억할 확률이 더 높다. 이는 사소한 효과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큰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노이즈 마케팅은 이 힘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새로운 브랜드나 제품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이름을 알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비록 부정적일지언정 자기 브랜드를 알리는 것이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보다는 더 낫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더라도 나중에 소비자들이 구매 결정을 할 때 그 브랜드는 선택지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큰 힘이다. 나 혼자 이번에 개봉한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은 별 힘이 없다. 그러나 수만, 수십 만 명이 말하면 굉장한 결과를 불러온다. 곧 수백만, 수천만 명이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고 엄청난 흥행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는 갑부가 되고 어떤 회사는 대기업이 된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많은 것들이 이렇게 말을 통해서 그 힘을 갖는다. 만약 사람들이 아파트에 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면 요즈음의 아파트 가격은 어떻게 될까?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수요와 공급 같은 경제적인 요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아파트에 관한 담론'이 아파트 시장과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일상 생활에서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들, 미디어에서 들리는 정보와 소문들이 아파트 시장을 지탱한다. "누구네가 몇 달 전에 어디 아파트를 얼마에 샀대."  "○○아파트 ○○억원에 신고가 거래." 이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다음에 아파트를 살지 주택을 살지 선택할 때, 혹은 여유 자금의 투자처를 찾을 때 아파트를 고를 가능성이 크다.

  말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도 한다. 만약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청년들은 진로에 있어서 어떠한 선택을 하고 또 어떠한 삶을 살게 될지 상상해보자. 청년들은 미디어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은 '적당한 나이가 되면 당연히 취업을 해야 한다'라는 명제를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명제에 대한 충분한 검토나 비판 없이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청년 실업률이 몇 퍼센트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청년들은 '당연히 취업을 해야되나 보다'라고 여기게 되기 쉽다. 취업에 관한 담론이 삶에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숙고할 청년들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취업에 관한 발화가 1/10로 줄어든다면 현실에 아무런 변화가 없더라도 청년들은 훨씬 덜 위축될 것이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도전할 것이다. 취업 담론이 청년 세대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크게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에 관해 말할지'에 신중해야 한다. '어떻게 말할지'뿐만 아니라, '그것에 대해 말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말함으로써 누군가가 권력을 쥐게 만들거나, 또는 내가  권력에 복종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의 몫은 매우 적을 수 있다. 그러나 수만, 수백만 명의 복종은 막강한 권력을 탄생시킨다. 그러므로 사회에 대한 내 몫의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글을 쓸 때마다 보이지 않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게 된다. 그 계약서는 시간 때우기 영화 한 편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덕분에 영화 제작자와 배우들이 떼돈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당신 평생을 구속할 노예 계약서일 수도 있다. 남들이 서명하길래 별 생각없이 따라 했다고 해서 당신 몫의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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