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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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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데뷰 밤 10시.술에 취한 나는어둠에 휩싸인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보았다.누구는 걸어가고, 누구는 부모님이 차로 데리러 왔다. 나도 그 어둠이 익숙했었다.저 문에 들어서고 나설 때그 안의 모든 것들이 꿈같이 역겨웠다. 그들은 운동장에 잔디를 심었다.잔디가 망가진다고체육 수업은 으레 강당에서 하는 것이었다.우리는 운동장 모서리를 가로질러 잔디를 몇 발자국 밟았다. 저녁을 먹고 교실로 걸어오며창문에서 터져 나오는 눈부신 형광등 빛을 바라보았다.끔찍하게 밝았다. 몰래 틀어놓은 TV 시트콤에서영혼 없는 웃음들이시들어가는 청춘을 핥았다.밝아서 끔찍했다. "잘못되었다."나는 하교하던 학생에게 외치고 싶었다.너도 우울하니?너도 분노하고 있니?나는 아직도 우울하단다.나는! 아직도 분노하고 있단다. 교문 앞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김건 外 6,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꾸리에, 2013. 들어가며 한국 사회에 관해 이야기하고 나면 다른 나라는 어떤지 궁금해진다. '무엇이 당연한 것일까', '지금 내가 마주한 문제들이 내 잘못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하는 물음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북유럽에 관한 책들을 읽고 나면 '그래,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나의 피로, 불안, 스트레스 그리고 우울함은 내 잘못이 아니다' 이런 위안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대한 감각을 갖게 된다. '나는 이러한 사회에서 살고 있구나', '나의 생각과 사고방식의 많은 부분들이 내가 속한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그와 함께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황신준 · 황레나 지음, 《스칸디 부모는 자녀에게 시간을 선물한다》, 예담, 2013. 들어가며 북유럽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북유럽이 우리에게 더 큰 열등감과 좌절을 느끼게안기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북유럽 사회는 잘 갖추어진 복지제도와 사회 기반시설들, 높은 소득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인간다운 삶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비인간적인, 그리고 고통스럽고 잔인한 현재를 감내해야만 하는 한국과는 너무도 다르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북유럽을 이상향으로만 여기고,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논의하기를 쉽게 포기해 버릴까 봐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바람직한 사회 상으로서의 북유..
아우슈비츠 나는 살아 남았다. 살아 남았다는 것은 다만 죽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 생동하는 삶은 나에게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기계의 일부 같았다. 그들이 부속품에 불과했을지라도 무죄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욕망을 억압 받았다. 무엇보다도 잔인했던 것은 그래야 하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무런 질량이 없었다. 그것은 규칙이었지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그 규칙에 대한 이유를 또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우리는 이내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우리는 질문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침묵은 그들의 편이었다. 침묵은 그들의 잔인함을 정당화했다. 고요함 속에서 그곳의 모든 것들이 당연해졌다. 그리고 그 당연함에 의해 우리의 청춘은 죽임을 당했다. 나는 그곳에 3..
벽처럼 칠판처럼 책상처럼 교실 벽과 칠판책상들 그 무엇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나 역시 아무 할 말이 없다 공기 중엔 무언가가 짙게 깔려 있다때때로 내 폐로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나는 생기를 잃는다그럼에도 내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이 곳에서 나는눈은 뜨고 있으나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귀는 들리지만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숨은 쉬지만 한 순간도 살아 있지는 않다 등뒤로 흘러가는 시간과앞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번갈아 처다본다영혼은 내 몸속 깊숙한 곳에 자신을 숨긴다 벽처럼 칠판처럼 책상처럼나는 내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 공간에 글을 쓰면서 나를 치유하고 싶다. 예전 일들을 다시 되짚어 보고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싶다. 가끔 '내 마음에 병이 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그러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