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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知圖)

필요

신기하다.

회사는 벌이지 않아도 되는 일에 수많은 사람들을 매달리게 한다.

그렇게, 나는 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를 하는데도 돈을 받는다.

나는 그 돈으로 사지 않아도 되는 물건들을 산다.

때로는 굳이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만나서

굳이 먹지 않아도 좋을 것들을 먹으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대화를 한다.

 

집에 돌아와 TV를 켜면

굳이 수많은 사람 앞에 나오지 않아도 좋을 사람들이

굳이 듣지 않아도 좋을 이야기를 떠들어 댄다.

그것을 보며 나는 하지 않아도 좋을 생각들을 하고

지니지 않아도 좋을 욕심들을 마음 속에 심는다.

그러고는 다가오는 다음 날을 생각하며

굳이 하지 않아도 좋을 걱정에 잠자리를 뒤척인다.

 

이른 새벽에 눈이 떠지면

굳이 느끼지 않아도 좋을 절망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나는 또 출근을 하여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숫자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듣고, 또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의미없이 보내지 않아도 되는 시간들이 흘러간다.

 

이제 나는 묻지 않아도 좋았을 것들을 물을 수밖에 없다.

나는 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나는 태어나지 않아도 되는 생명이었던가?

 

다음 생에는

그 일에 매달리지 말고

그 물건들을 사지 말고

그 절망감도 느끼지 말기를

 

다음 생에는

싫은 것에는 싫다고 말하고

좋은 것에는 좋다고 말할 수 있기를

 

다음 생에는

반드시 태어나야만 하는 생명이기를

 

이렇게,

나는 굳이 바라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바란다.

 

 

 

(작성 : 2018. 10. 22.)

(최종 수정 : 2020.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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