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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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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데뷰 밤 10시.술에 취한 나는어둠에 휩싸인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보았다.누구는 걸어가고, 누구는 부모님이 차로 데리러 왔다. 나도 그 어둠이 익숙했었다.저 문에 들어서고 나설 때그 안의 모든 것들이 꿈같이 역겨웠다. 그들은 운동장에 잔디를 심었다.잔디가 망가진다고체육 수업은 으레 강당에서 하는 것이었다.우리는 운동장 모서리를 가로질러 잔디를 몇 발자국 밟았다. 저녁을 먹고 교실로 걸어오며창문에서 터져 나오는 눈부신 형광등 빛을 바라보았다.끔찍하게 밝았다. 몰래 틀어놓은 TV 시트콤에서영혼 없는 웃음들이시들어가는 청춘을 핥았다.밝아서 끔찍했다. "잘못되었다."나는 하교하던 학생에게 외치고 싶었다.너도 우울하니?너도 분노하고 있니?나는 아직도 우울하단다.나는! 아직도 분노하고 있단다. 교문 앞은 여전히 어두웠다..
아우슈비츠 나는 살아 남았다. 살아 남았다는 것은 다만 죽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 생동하는 삶은 나에게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기계의 일부 같았다. 그들이 부속품에 불과했을지라도 무죄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든 욕망을 억압 받았다. 무엇보다도 잔인했던 것은 그래야 하는,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무런 질량이 없었다. 그것은 규칙이었지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그 규칙에 대한 이유를 또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우리는 이내 묻는 것을 그만두었다. 우리는 질문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침묵은 그들의 편이었다. 침묵은 그들의 잔인함을 정당화했다. 고요함 속에서 그곳의 모든 것들이 당연해졌다. 그리고 그 당연함에 의해 우리의 청춘은 죽임을 당했다. 나는 그곳에 3..
벽처럼 칠판처럼 책상처럼 교실 벽과 칠판책상들 그 무엇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나 역시 아무 할 말이 없다 공기 중엔 무언가가 짙게 깔려 있다때때로 내 폐로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나는 생기를 잃는다그럼에도 내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이 곳에서 나는눈은 뜨고 있으나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귀는 들리지만 아무것도 듣지 않는다숨은 쉬지만 한 순간도 살아 있지는 않다 등뒤로 흘러가는 시간과앞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번갈아 처다본다영혼은 내 몸속 깊숙한 곳에 자신을 숨긴다 벽처럼 칠판처럼 책상처럼나는 내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 공간에 글을 쓰면서 나를 치유하고 싶다. 예전 일들을 다시 되짚어 보고 지금의 나를 이해하고 싶다. 가끔 '내 마음에 병이 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그러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