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知圖)

나의 연극

Binaural 2018. 11. 7. 21:24

  방 안이 그리 어둡지 않은 것 같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자고 있었는지 깨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뇌는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피곤하다. 


  이제 방 안에서 어둠의 흔적이 사라졌다. 나는 새벽과 아침의 경계를 느낀다. 벽을 바라본다. 이것이 현실일까? 그다지 현실 같지가 않다. 이런 느낌에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나는 내 몸을 일으켜 새워 출근을 해야 한다. 나는 취직을 했다. 벌써 꽤나 긴 시간이 흘렀다. 운이 좋았던 셈이다. 


  4학년이 되자 대학원을 갈까, 취업을 할까 생각했던 것 같다. '취업을 해야만 하는 걸까? 대학원에 가면 그 다음에는?  나는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대학 생활에서 나는 한 일이 없었다.  제자리 걸음만 한 것 같다. 4학년 2학기가 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듯 했다. 취업을 못하면 나는 백수가 되는 것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나는 결심했었다. 절대로 아버지처럼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의미 없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거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에겐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감도 있었다.

  

  사춘기 시절의 그 결심과 지금과의 괴리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단순히 그 때는 세상 물정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때보다도 지금, 어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몸소 체험하고 있는 지금이, 세상의 모습이 훨씬 더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과감한 시도들, 그리고 풍부한 경험들을 했다면 상황은 지금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두려움이 너무 많았다. 누구나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두려움을 뒤로 한 채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러나 나는 대개 두려움에 굴복하는 쪽이었다. 주변의 평가나 시선에도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나는 욕심도 많았다. 무엇이 되었든 잃으려고 하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지도 못하다가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의 두려움에 힘을 실어 준 위협들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신이 안 좋다면? 수능을 못 본다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다면? 학점이 좋지 못한다면? 취업을 하지 못한다면? 결혼을 하지 못한다면? 승진을 못한다면? 직장을 잃게 된다면? 그렇게 되면 나는 불행해지거나 주위로부터 우려나 비난 섞인 시선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안정적인 삶의 과정을 이탈하게 되면 극소수는 매우 성공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비참해질 것이라는 위협을 느껴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극소수에 들 자신도 없었고 확률도 정말 적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안정적인 길을 선택해 왔다. 그러나 이 길은 내가 좋아서 걸어 온 길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끌여 온 것만 같은 기분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다. 이제 나는 묻는다.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걸까?

 

  학교에 진학하고, 취없하고, 결혼하고, 승진하고, 그러다가 퇴직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삶의 과정에 무엇인가가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서 자신의 의지, 자신의 본능, 자기의 이유,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를 둘러싼 상황들이 연극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배역과 대사, 행동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대본에 주어진 대로 대사를 말하고 행동을 하면 된다. 내 언행에 대한 이유는 나에게 물을 필요가 없다. 나는 대본에 써 있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기를 잘 하면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우려와 비난, 혹은 처벌이 뛰따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대 위의 사람들 모두가 연기자이면서 동시에 관객이기에, 그들의 칭찬이나 비난도 대사의 일부인지 진심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평화롭게 살고 싶다.어렸을 때처럼. 그리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내 마음만 바꾸어 먹으면 나는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펑화로워질까?


  아니면 문제는 역시 돈인가? 돈만 있으면 이 연극에서 탈출할 수 있는 건가? 







(작성 : 2014.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