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知圖)/자본주의

개념의 한계

Binaural 2023. 7. 14. 12:12

  모든 개념은 지시하는 대상이 명확하지가 않다. 개념은 여러 사물들 중에서 공통된 속성만을 뽑아서 만든 것이다. 공통된 것만 가리키기 때문에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다. 특히 "주의"가 들어간 말들이 그러하다. '자본주의'는 특히 더 그렇다. 예를 들어, '채식주의'는 우리는 '채소만, 혹은 채소 위주로 식사를 하는 것, 또는 이를 옹호하는 경향'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어떤 정의를 보아도 그 뜻이 와닿지 않는다. 아래의 설명들을 보면,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채식주의'처럼 특정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두고 이윤 획득을 위해 상품의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경제체제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37535&cid=40942&categoryId=31818)

 

  · 생산 수단의 사유제 아래에서 이윤획득을 위한 상품생산이 행해지는 경제체제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37794&cid=46630&categoryId=46630)

 

  그 이유는 아마도 '자본주의'가 '세상'이라는 말처럼 거의 모든 것을 지칭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본주의는 우리가 출근해서 근무하고, 월급을 받고, 식료품을 사고, 투자도 하고, 물건도 팔고, 생활 수준이 오르내리는 것 등 개인이 생활하고 생계를 꾸려 나가는 거의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거기다 더해, 산업, 고용, GDP, 경제성장률, 국제 교역, 환경 등 국가와 국제 사회를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한 거의 모든 활동들을 포함하거나 거기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논의를 할 경우에는 한계가 많다.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는 나쁘다"거나 "자본주의때문이다"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런 말들은 "세상 살기 힘들다"처럼 푸념에 가까울 뿐 정보나 의미를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푸념은 주장이 아니기 때문에 논증을 할 수도 없어서, 논리적인 대화가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자본주의'는 이제 공기나 물처럼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뜻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은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다. 안다고 하더라도 이 우주 전체에 대해 좋다 나쁘다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무 실효성이 없다. 몇몇 사람이 바꿀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하고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환경은 심하게 파괴되고 있다. 소중한 생명을 잃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더이상 이러한 삶의 방식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느끼고 있다. 그들은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것 같다고 느끼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여기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작은 희망마저도 사라질 것만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렵더라도, 아무 실효성이 없을 것만 같더라도,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구체적인 것들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자기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푸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위로 받는 것 말고는 더이상의 논의를 할 수가 없다. 대신 주장을 하고 근거를 대야 한다. 그래야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