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知圖)

생존의 띠

Binaural 2018. 11. 7. 21:29

  점심시간, 밥을 먹으러 나간다.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자 음식이 나온다. 나는 마음 한 쪽 구석이 불편해진다.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음식일까?' 이런 의구심은 우리가 소비를 할 때마다 자주 느끼게 된다. 광고를 보고 상품을 주문했다가 품질에 실망을 했을 때, 예고편을 보고 기대에 차서 영화를 보았다가 실망을 하고 나올 때... 이럴 때면 생산자가 나보다는 돈을 우선시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일종의 문화가 된 것 같다. 자본주의 특유의 문화랄까.  
  이런 느낌을 경험할 때마다 나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다른 그 누구, 혹은 다른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서운해진다. 우선순위에서 밀린 정도가 아니라 중요하지 않은 존재, 하찮은 존재로 취급 당했다면 얼마나 소외감을 느끼게 될까. 
  나는 이런 감정의 근저에는 외로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조자나 판매자가 나의 건강과 만족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나를 어느 정도가 되었든 외롭게 만든다. 이를 '소외감'이라고 불러도 좋다. 이것이 문화가 되었다면 많은 사람들이 소비를 할 때마다 광범위하게, 일상다반사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소외감은 혼자서 살아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나의 안위는 저들에게 별로 중요치가 않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생겨도 도와줄 사람들도 분명 아니다. 결국, 세상을 살기 힘든 곳으로 인식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살기 힘든 세상에서 자기 자신만은 살아 남기 위해, 자기 가족만은 살아 남게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이 많을수록 생존 가능성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의 행복이냐 돈이냐의 선택의 순간에서 돈 쪽을 선택하게 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도식에 다다른다. 돈이 먼저인 문화 속에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남기 힘든 곳으로 인식한다. 내가 어떻게 되든 다른 사람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가정이 있다면, 사랑하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남아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 더 많은 수입, 더 많은 매출을 위해 다른 것들은 기꺼이 희생시킬 수 있다. 그러한 나의 노력으로 세상은 또 좀더 살아가기 힘든 곳이 된다. 그렇게 이야기는 돌고 돈다.  
  내가 좋은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 취직을 해야 하는 이유로 느꼈던 것들, 그리고 뉴스와 인터넷, 신문에서 보고 들었던 이야기들이 저 그림 속에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 이야기들이 다 사실이라면 이 굴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저 순환의 고리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모든 경제 활동이 저 그림에 들어 맞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자본주의 문화의 부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그림인 듯도 하다. 예를 들어. 질 좋은 음식을 판매하여 유명세를 타고 돈도 많이 버는 음식점들도 있다. 그리고 어떤 음식점 경영자들은 양극단의 중간 지점 어딘가에서 타협점을 찾을 것이다. 원가와 손님의 건강을 모두 고려해 너무 좋지도, 너무 나쁘지도 않은 재료를 쓰거나 어떤 재료는 좋은 것을, 어떤 재료는 질 나쁜 것을 쓰는 식으로 말이다. 현실 세계의 모습은 다양할 수 있다. 
  경제학 원론에서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재화와 서비스의 질이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는 그것 말고도 다른 선택안들이 존재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해 더 나쁜 질의 재화와 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작성 : 2014. 9. 9)

(최종수정 : 2019.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