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知圖)

벌거벗은 임금님 1

Binaural 2018. 11. 7. 21:44

  나는 ‘동의와 문맥’에 대해 생각하다가,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바로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이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주어진 흐름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현상이 풍자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어느 무능하고 옷만 좋아하는 황제가 있었다. 어느 날 황제의 앞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감으로 세게 제일의 옷을 만들 줄 안다고 주장하는 두 재단사가 나타났다. 황제는 기뻐하며 그들에게 거액의 돈을 주며 그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오라고 하자 재단사는 그 옷감은 '구제불능의 멍청이에게는 안 보이는 옷감'이라고 못 박아 두었다.

 

  그 뒤에 황제는 재단사들을 의심하여 신하를 보내 옷의 완성도를 체크하게 했는데, 신하의 눈에 분명 옷은 보이지 않았고, 재단사들은 허공에서 옷을 만드는 시늉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신하는 혹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가 바보로 보이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옷이 만들어지고 있는다고 거짓말을 했고, 이후 파견한 다른 신하들도 같은 이유로 옷이 보인다고 거짓말을 하고... 무한 테크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어느 날 재단사들이 옷이 완성되었다며 황제에게 선사했다.

 

  물론 황제 역시 옷이 안 보이긴 마찬가지. 하지만 신하들이 그동안 옷이 보인다고 했으니 자기만 안 보인다고 하면 사람들이 자신을 바보라고 손가락질 할 것이 두려워 황제도 아름다운 옷이라고 극찬한다. 그리고 황제는 재단사들에 의해 그 옷을 입었다. 물론 재단사들은 입히는 시늉만 했고, 황제도 장단 맞춰 입는 시늉만 했다.

 

  황제는 옷을 직접 입고 거리 행차를 나갔다. 사실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신하+기타 등등 모든 이들의 눈에 옷은 보이지 않지만 자기들도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한 꼬마가 '황제폐하께서 벌거벗었다!'라고 소리치면서 드디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황제는 자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정말 옷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황제는 체통을 생각하여 이를 무시하고 계속 행차를 이어나갔다.

 

<출처>  

https://namu.wiki/w/%EB%B2%8C%EA%B1%B0%EB%B2%97%EC%9D%80%20%EC%9E%84%EA%B8%88%EB%8B%98

 

 

 

  이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요소들을 살펴보자. 

 

  - 재단사들

  일단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기획했던 이들이다. 보통, 이런 이들을 “사기꾼”이라고 부른다.

 

  - "구제 불능의 멍청이"

  재단사들은 자신들이 만든 옷이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에 따라 구제불능의 멍청이인지 아닌지가 결정된다는 ‘사회적 평가 체계’를 설정해 놓았다. 안 보이는 이에게는 “구제불능의 멍청이”라는 조롱, 비난, 무시 등의 처벌이 뒤따를 수 있다. 그러한 처벌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처벌이 일어날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인지시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신하들

  그래도 사회의 지도층이라 할 수 있지만 자신의 안위, 두려움 때문에 재단사들의 기획대로 움직이게 된다. 

 

  - 시늉

  옷은 없다. 즉, 실체는 없다. 그러나 재단사들은 실체가 있는 것처럼 시늉을 함으로써 정말로 실체가 있는 것과 동일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황제는 옷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그것을 입었고 행차까지 했다. 내용이 없어도 포장을 이용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태도가 본질을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체를 빼버려도 상관 없다는 뜻이다. 이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할 때, 언어적 요소보다 비언어적 요소를 훨씬 더 중시한다는 점과도 관련되는 것 같다. 

 

  - 대세(맥락, 문맥)

  ‘시늉’과 ‘사회적 평가 체계’가 일정한 흐름을 만들어 놓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다. 이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옷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에 저항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각능력이나 이성보다는 일단 대세에 따른다. 

 

  - 거짓말

  사기를 치려는 재단사들은 그렇다 쳐도, 신하들과 황제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직하지 않다. 이 이야기에서 정직한 이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소리친 꼬마뿐이다. 각각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정직하게 대하고, 또 스스로에게 정직한 삶을 산다면, 재단사들의 기획은 실패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이 이야기는 황제, 신하, 그리고 길거리의 사람들이 서로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하지 않은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정직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직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양심과 배짱을 세트로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때묻지 않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해야 한다.

 

  - 관계와 소통

  신하들 중 충신은 없었나 보다. “구제불능의 멍청이”가 될 각오를 하고 황제에게 충언을 해주는 신하가 없었다. 피상적인 군신(君臣) 관계로 추측된다. 길거리의 사람들은 어땠을까? 원작을 읽어보지는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위 인용문처럼 길거리의 사람들도 옷에 관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나 실은 저 옷이 안 보여…’라고 옆 사람에게 말할 수 있었고 이것이 반복됨으로써 ‘나만 안 보이는게 아니구나’라는 인식을 모두가 공유하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여전히 황제에게 대놓고 벌거벗었다고 말하기는 두려워서 잠자코 있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재단사들이 사기꾼이라는 사실은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친밀하지 않고 피상적이거나 사회가 개인화 되었을 경우, 그 사회는 사기와 기만에 농락 당하기 쉬워지는 것 같다. 즉, 조직과 사회의 비합리성이 커진다. 반대로, 친밀한 관계, 활발한 소통을 통해서 사기(詐欺)에 대한 사회의 면역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 대중

  이 이야기에서 길거리의 사람들, 대중의 역할이 가장 흥미롭다. 이들은 피해자 쪽에 가까운가, 가해자 쪽에 가까운가? 이들도 황제처럼 피해자로 볼 수 있다. 이들도 황제의 새 옷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오는 등 얼마간의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또한 ‘옷이 정말로 있는가 보다’라면서 애써 자신의 눈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피해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옷이 눈에 보인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동의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이 사기 행각을 방조했다. 가해자 쪽에 가깝다 한들 이들은 처벌받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이 방조하는 쪽을 선택한 적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저 주어진 흐름에 몸을 맡겼을 뿐이다. 선택하지 않았으므로 책임도 없다. 어른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어떤 잘못을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꼬마 아이보다도 인지능력, 사리분별력, 행위 능력이 떨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약간 정직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대중은 금치산자란 말인가?

 

  - 꼬마의 외침

  진실의 선언이다. 거짓을 모르는 순수함이 진실을 선언한다. ‘당연함’을 천명한다. 빨간 것을 빨갛다고 말하고, 파란 것을 파랗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중얼거림이어서는 안 되고 외침이어야 한다. 

 

  - 사기(詐欺)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는 사기(詐欺)에 관한 이야기다. 어떤 식으로 사기가 기획되고 어떤 과정을 거쳐 실행되는지, 그것에 필요한 요소들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재미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저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로 여겨서는 안 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약간씩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많은 현상들 속에서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의 구조, 상황,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고, 여러 다른 요소들과 함께 혼재되어 있을 뿐이다. 

 

 

(작성 : 2017. 8. 30.)

(최종수정 : 2019. 3. 30.)